사연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기억의 갈래_올가 세즈녜바
기념물이 정녕 ‘어느 개인이나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각이나 구조물’만을 뜻한다면 분명 곤경에 처할 사람 이 있을 것이다. 미국 남북 전쟁에서 남군의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이름에 한 여성의 죽음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되었다. 2017년 여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는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문제를 두고 백인우월주의자 폭력 집회와 이에 맞서는 반대 집회가 열렸고, 헤더 헤이어라는 한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백인우월주의자가 몰던 차량에 의한 사고였다.
많은 남부 연합군 영웅들처럼, 리 장군도 일찍이 노예제도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대중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았다. 리 장군을 비롯한 전쟁 영웅들의 조각상은 뉴올리언스와 LA, 게인스빌, 플로리다 잭슨빌 같은 도시에서 자취를 감췄다. 북쪽인 뉴욕까 지 연합군 기념물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퍼져나가면서, 뉴욕시의 기념물도 존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자연사 박물관 앞 루스벨트 대통 령 기마상, 뉴욕 5번가와 103가에 세워진 산부인과 의사 J.마리온 심스의 조각상, 센트럴파크 남서쪽 구석에 서 있던 콜럼버스 기념비까지도 모두 철거 위기에 놓였다. 루스벨트는 우생학을 옹호한 대통령으로, J.마리온 심즈는 흑인 여성 노예를 마취 없이 부인과 실험에 이용한 의사로, 콜럼버스는 토착민을 전멸시킨 탐험가였기 때문이다. 역사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변한다.
왜 기억하나, 어떻게 기억하나_디에고 떼르나
형체 없이 갈 곳 잃은 지난날들의 기억을 담은 공간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으며,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다. 누군가 기억을 찾아와 잠시 머물거나, 심지어 이어 살게 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맞닿고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얻는다.
개인이 경험한 과거를 공간으로 되살리는 작업으로, 우리는 미래를 슬쩍 엿보며 예측하기도 한다. 영화 ‘메멘토’의 등장인물처럼 매 순간 발견을 위해 나아가는 아득한 여정인 동시에, 알도 로시의 작업처럼 생애를 흐르는 상징적 성격을 띠기도 하며,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작품처럼 기존 상황에 좌우되기도 한다. 자신의 기억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특정한 형태도 매뉴얼도 없다. 오로지 과거만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료가 된다.
이번 특집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주제로 삼은 건축물들을 살펴본다. 과거에 얽매이고 머무르기보다, 기억으로부터 원동력을 얻어 혁신적 미래를 보여주는 프로젝트들이다.




